다윗

사무엘로 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

다윗은 소년시절 사무엘 선지자로 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삼상16:13) 후  사울왕궁에서 사울의 악귀를 내어 쫓기 위해(삼상16:23) 왕궁에서 3년간 사울왕과 함께 지내다
 불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오던중  수많은 여인들이 노래했다(삼상18:6-7)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을 때 사울은 시기 질투심으로 다윗을 죽기기를 시도했으나(삼상18:10-11) 실패,  
 다시 다윗을 전쟁중에 죽기를 바라고 국경을 지키는 국방관리 직으로 천부장직(삼상18:13)으로 2년,  군 통치력과 전략에 명수가 되었다. 사울왕이  다윗을 불레셋에 보내 죽이기 위한 술책으로 다윗이 불레셋 사람들의 포피 100개를 가져온다면 자기 딸 미갈을 주기로 약속(삼상18:25-27) , 다윗이 모피 200을 가져다 줌으로 사울의 사위가 된후,  10년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는 연단을 사울로 주터  받게된다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후 15년간의 연단으로 철두철미한 신본주의 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되었다
  

다윗의 도피생활 10년

   삼상19장에서 발단된 다윗의 도피 생활이 본격적으로(21-31장) 진행된 기사 내용. B.C.1020-1010년까지 대략 10년간 계속된 다윗의 도피 생활은 대략 3기로 구분된다.  기브아 다윗의 자택에서 헤렛 수풀까지 (B.C.1020-1018,  19:9-22:23)의 1차 도피기는 비교적 도피에만 급급했던 시기이다. 
 한편 그일라에서 십 항무지까지(B.C.1017-1015, 23:1-26:25)의 2차 도피기는 주지하는 대로 다윗이 자신의 추적자 사울의 목숨을 두번이나 살려 주고 나아가 도피 생활 중에서 나마 충직한  추종 세력들의 도움으로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는 몇몇 중요한 사건도 담당했던 시기이다. 
 한편 불레셋 땅 가드에서 헤브론까지(B.C.1015-1010, 27:1-삼하2:1)의 3차 도피기는 절대적 위기에 몰린 다윗이 할 수 없이 불레셋 땅으로 망명했던 시기이다. 
 다윗은 사울의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결코 스스로의 생각이나 힘으로만 대항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음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신본중심인  다윗의 처세를 배워야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패전 소식을 접한 다윗(삼하1:1-16)

 
  다윗이 길보아 전투에서의 이스라엘의 패전 소식과 함께 사울 및 요나단의 전사 소식(삼상31:1-6)을 접하는 장면이다. 즉 1)다윗은 아멜렉을 진멸한 후(삼상30:1-30) 시글락에 머물고 있던 제3일째 되는 날에 이스라엘의 용병이었다가 도망친 한 아말렉 소년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패전과 사울 및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듣는다(삼하1:1-4절).  2)그리하여 아말렉 소년에게 좀더 자세한 보고를 요구하니 그는 다윗에게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허위 보고한다(삼하1:5-10절). 3)이에 다윗은 매우 슬퍼하며 금식한 후 스스로 사울을 죽였다고 허위 보고한 아말렉 소년에 대해서는 사형을 명한다(삼하1:11-16절).
 
 이 사건은 다윗의 입장에서 볼 때  사울의 죽음은 오랜 도피 생활(삼상18-27장)의 마감과 함께 그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획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일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해 극도의 슬픔을 토로하는 부분(삼하1:17-21, 24-27절)과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과 미덕을 찬양하는 부분(22, 23절), 또한 자신에 대한 요나단의 우정이 여인에 대한 사랑보다 더 깊은 것이었다고 칭송한다(26절)
 특히 사울의 단점을 들어내지 아니하고 장점을 부각시켜 칭송한 다윗의 인품은 조만간 신정적 왕정 체제하에서 신정 왕국을 이어갈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성숙된 성품이 아닐 수 없다.


다윗이 유다 족속의 왕이되다(삼하2;1-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삼하5장)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지 실로 15년만의 일이다(삼상16:1-13). 다윗이 원하기만 했었다면 더 빨리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삼상24:4; 26:6-12)를 인간의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기다린것, 하나님은 다윗을 헤브론으로 인도하시고,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의 왕으로 삼게 하셨다(삼하2:3)
 다윗은 왕위에 즉위한 후 무엇보다도 먼저 사울을 장사했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삼상31:11-13)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그들의 노고를 치하(삼하2:5-7절)하므로 사울 사후 혼란했던 나라를 수습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었다

  이스라엘 군장 아브넬의 피살(삼하3:22-30)과 이스라엘왕 이스보셋의 피살(삼하4:1-7)로 인한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 왕이 된 후 여부스(예루살렘;5:6-16)를 정복한 다음  블레셋(삼하5:17-) 정복 사업에 승리로 신망을 얻은 다윗은  하나님이 궤(사울왕이 소흘히 했던 대상13:3)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에서 다윗성으로 옮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다(삼하8-10장)

 제6장-10장 까지 다윗 왕정이 신정 왕국으로서의 기틀을 확고히 해나가는 과정 중에  8장은 다윗의 정복 사업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국력을 신장하고(1-14절), 대내적으로 행정 조직을 정비함으로써 국가 통치에 효율성을 기한 사실(15-18절).  제7장 다윗 언약을 통하여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11절) 하셨던 약속의 성취로서 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신정 왕국을 위하여 모든 대적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증거해 주는 것. 

 
제11장 다윗의 범죄로 인한 다윗 개인과 그의 전 왕국의 시련

  삼하10장까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다윗의 순종적인 삶으로 다윗 개인은 물론 그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다스리던 이스라엘이 신정 왕국으로서 기틀을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왕국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참 번영과 영화를 누렸던 사실들에 대해 언급. 
 그러나 11장은 지금까지의 순종과 축복으로 일관된 복된 생활에 참담한 고통을 가져온 다윗의 밧세바 간음 사건과 그녀의 남편 우리아 살해 사건을 기록에 이어 제11-20장까지는 다윗의 범죄로 인한 다윗 개인과 그의 전 왕국의 시련에 대한 기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먼저 1절은 다윗 범죄의 배격으로서 이때가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의 수도 랍바를 점령하기 직전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2-5절은 다윗의 밧세바 간음과 밧세바의 잉태에 대하여, 6-13절은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전투 중에 있는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 그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도록 시도한 사실에 대하여, 14-25절은 다윗이 1차 계략에 실패하자 2차로 요압에게 은밀히 청부하여 우리아를 죽게 한 사실에 대하여, 26,27절은 우리아의 장례식과 다윗이 밧세바를 아내로 취한 사실, 그리고 밧세바가 아들을 낳은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런 끔찍한 범죄는 외면적으로만 보면 평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던 다윗이 방심하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발생하여 급격히 비화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다윗은 평소에도 이런 범죄를 범할 소지는 충분히 갖고 있었다. 즉 "아내를 많이 두어서그 마음이 미혹되지 말 것이며"(신17:17)라는 왕으로서의 절제를 그는 평소부터 어기고 그동안 많은 첩들과 아내들을 거느렸다. 그는 어떠한 여자도 쉽게 자기 소유로 삼는데 익숙해져 있었기에 밧세바를 탐하게 되었고 그러한 탐심의  결과로 순간적으로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는 더 큰 죄를 짓게 된 것이다 (약1:14,15). 이러한 사실은 다윗과 같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성군도 언제든지 범죄에 빠질 수 있는 불안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누구라도 한번 범죄에 빠지면 결국 더 큰 죄에 휘말릴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 준다(롬3:10)
 한편 하나님은 다윗이 이토록 범죄하였지만 한 번 주신 다윗 언약을 폐하지 않으시고 먼저 회개(삼하12:1-15)하는 그에게 범죄의 대가는 치르게 하셨으나 다윗 자체만은 구원해 주시고 나아가 그를 통해 구속사를 계속 진행하시어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게 하셨다(마1:1). 

 
 제13장 암논의 다말 추행과 압살롬의 보복

  삼하13장은 다윗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의 징계로서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고 했던 예언의 말씀이 먼저 다윗 왕가에서부터 시작되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19절은 다윗의 장남 암논이 이복 누이 동생 다말을 추행한 사건 을 기록,  이러한 근친 상간은 율법에서 엄히 금하고 있는 것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다(신22:23-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에 대해 아무런 징계도 가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자신도 간음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것이다.  
  후반부 20-29절은 다말의 친 오빠 압살롬이 계획적으로 암논을 보복 살해한 사건 및 그로 인한 압살롬의 도주와 다윗의 슬픔에 대하여 기록.  결국 다윗이 근친 상간죄를 범한 암논에 대해 아무런 징계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살롬에 의한 형제 살인으로까지 문제가 악화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다윗 가문의 왕권을 끝까지 지켜주신 것은 다윗 언약(7장)에 나타난 바 그들의 가문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고자, 즉 비록 그 언약의 한 쪽 당사자인 인간측은 계속 하나님을 저버렸어도 하나님은 인간을 저버리시지 않고 지켜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실로 구속사는 계획에서부터 성취에까지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만 진행된다는 것을 알수있다. 
 삼하13:37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한 후 그술 왕 외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다윗의 추격을 피했다. 


제14장 압살롬의 귀환 그리고 다윗과의 화해

   14장은 압살롬의 도주로 이어졌던 다윗 왕가의 재난이  이제 다윗 왕국 전체에 대한 재난의 서곡. 
  1-3절은 다윗의 군장 요압이 압살롬의 귀환을 주선하는 장면, 4-17절은 요압의 책략에 따라 드로아 여인이 비유로서 다윗을 설득하는 장면, 18-24절은 요압으로 하여금 압살롬을 귀환케 하는 다윗의 허락을 기록.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의 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치 아니하고 요압의 간청에 의해 마지 못해 다윗이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했다는 사실.  
 후반부 25-33절에서 압살롬의 신상에 대한 소개(25,26절), 다윗 왕을  뵙기위한 압살롬의 난동(28-32절), 다윗과 압살롬의 대면(33절),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아비의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패역한 아들의 모습을 발견,  구속사적 의미로 볼때  죄에 대한 완전한 해결이 없는 사랑은 결코 정상적인 사랑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급기야 심각한 왜곡 상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하나님은 모든 성도의 아비로서, 이같은 사랑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막대기와 채찍으로 징계하사 죄를 해결하신 후 다시금 사랑을 베푸시는 (7:14) 공의적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음을 주시해 보세요
  25절 압살롬의 출중한 외모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보여주며, 26절 압살롬의 머리털과 숱이 남들보다 빨리 자랐고 많았음을 암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머리털은 그 사람의 힘과 기백을 나타낸다고 보았다(삼손의 예) 압살롬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 머리털고 인해 결국 훗날 죽음을 당케 된다는 사실(삼하18:9)을 시사. 32절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고 하는 말을 보면 그는 자신의 죄를 전혀 깨닫지도 회개치도 못하는 상황에서 33절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여기서 "입을 맞추는" 행위는 단순히 사랑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에 대한 완전한 사면과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윗은 압살롬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했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다만 부성애에 이끌려 압살롬을 용납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나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반역 계획을 착실하게 수행하게 되는데(삼하15:1-6), 이것은 일찍이 나단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다윗 가문에 대한 징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다윗의 범죄가 그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엿볼수 있다. 


제15장 압살롬의 반란과 다윗의 도피

   15장 부터 19장 까지에서는 압살롬의 반란 사건을 통해서 신정 왕국의 대표자로서의 다윗의 범죄가 이스라엘 왕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6절은 압살롬이 다윗과의 회해로 자신의 왕자로서의 지위가 회복되자(14:28-33), 그러한 지위를 이용하여 은밀히 반란을 준비하며 다윗에게 향해 있던 백성들의 민심을 자신에게로 유도한 사실을 기록, 7-12절은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스스로 대관식을 행하고 반란의 가치를 높이 들었던 사실, 13-29절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소식을 듣고 충성스런 신하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도피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는 돌려보내며 제사장들에게 그것을 잘 보존케 한 사실, 30-37절은 다윗이 압살롬과 그의 모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하시기를 기도한 사실, 아렉 사람 후새를 이용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할 계획을 강구한 사실을 기록. 
  과거 다윗이 여호와이 주권을 인정치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따라 함부로 왕권을 사용하며 범죄했던 자신에 대한 하나님이 징계로 알고 그 시련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심지어 그가 압살롬과 단 한 번이 접전도 없이 다윗 성의 왕위를 포기하고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언약궤를 메고 나왔다가 다시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린 일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없을 때는 언제든지 그 왕권을 빼앗길 수 밖에 없다는 것,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언제든지 더욱 선한 방법으로 그 왕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에 다윗은 압살롬의 추적을 피해 도피하면서 더욱더 겸손한 신앙으로 자신을 무장했고 또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권을 보호해 주시기를 위해, 또 압살롬과 그의 모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해 주시기를 위해 간구했다(31절),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 당했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으로 그 시련들을 견디어냈다. 
 

           제16장 다윗의 시련과 압살롬의 다윗 성 입성 

    다윗이 본격적으로 피난길에 오른 사실과 압살롬이 마침내 다윗 성에 입성한 사실을 소개, 다윗이 감람 산 마루턱을 막 지날 즈음 므비보셋의 시종, 시바로부터 므비보셋이 다윗을 비방했다는 거짓 보고에 접함(1-4절), 다윗이 요단 강을 건너기 직전 바후림에서 게라의 아들 시므이로부터 심한 욕설과 저주를 들음(5-14절), 압살롬의 다윗 성 입성 및 아히도벨의 악한 모략에 따라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취함 (15-23절)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
  이상과 같은 내용에서 우리는 반역자 압살롬을 피해 피난 길을 떠난 다윗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하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비록 다윗을 따르는 몇몇 충신들 곧 잇대, 사도, 아비아달, 후새등이 있었지만 다윗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버림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신정 왕국의 정통성 있는 주권자 다윗을 버리고 옛적 인본주의적인 사울 왕가를 그리워하기까지 했다(3,8절), 특별히 시므이의 통렬한 저주는 다윗이 그런 비참한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은 그가 사울 왕가를 무너뜨림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백성들의 냉대도 그럴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디어 압살롬이 다윗성을 차지하고 또 다윗의 후궁들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왕권 획득을 온 백성에게 공표하였고, 이제 누가 보아도 다윗이 패배하고 압살롬이 승리한 것으로 생각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겉으로 보기에는 반역자 압살롬이 절대 승리한 듯한 상황 속에서도 다시금 회개하는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시고 압살롬의 반역을 파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렉 사람 후새를 통해 점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16-19절), 여기서 우리는 한 번 범한 죄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가 하는 사실과 아울러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께 회개하는 자는 끝내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다(엡2:8-10)



제17장 후세의 모략과 아히도벨의 모략 

  여기서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였다(삼하11:3=삼하23:34), 처음 다윗의 모사로서 다윗궁에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 그러므로 다윗이 쉽게 옥상에서 밧세바를 발견할 수 있었다(11:2).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  아히도벨은 고향 길로에 머물고 있던 중 압살롬의 모사로 청함을 받았다(15:12),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사를 들었으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새의 모사를 받아들었기 때문에 아히도벨은 고향 길로에 돌아가 (17:23) 목매어 죽음을 택함,  결국 압살롬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였다


제18장 에브라임 수풀 전투 및 압살롬의 죽음

 제15-18장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압살롬 반란 사건 기사의 결정 부분으로서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마침내 에브라임 수풀 가운데서 접전한 사실과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기록. 
  1-5절 다윗 군대의 압살롬 반란군 대항 준비,  6-8절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의 다윗 군대의 승리,  9-18절 반란 주모자 압살롬의 비참한 최후,  19-33절 압살롬의 죽음에 관한 두 전령의 보고 및 다윗의 슬픔등으로 구분. 

 

제23장 다윗의 마지막 노래 및 다윗의 용사

    다윗의 생애 가운데 경험한 바 모든 대적들에게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결단코 그 개인만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용사들의 헌신에 의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다윗의 용사들  첫째 3인, 둘째 3인(23:18)에 요압의 아우 아비새와, 30인 용사(23:24)에 요압의 아우 아사핼이의 기록을 볼수 있으나  군대장관으로 충성을 다했던 요압의 이름은 찿아볼수 없다,  그는 누구보다 다윗에게 충성스러웠던 용사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요압이 이스라엘의 군장 아브넬의 배를 찔러 죽이므로 (삼하3:22-30) 다윗을 마음을 상하게 했으며,  요압이(삼하18:9-15) 압살롬을 죽이므로 다윗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한 점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아히도벨 :  만약 다윗의 최고 모사 아히도벨이 다윗왕이 범한 밧세바의 일로 길로에 있는고향집에 머무르다 반역자 압살롬의 모사꾼이 되어, 자기 모사가 받아드러지지 않으므로 고향으로 돌아가 목매어 죽음(삼하17:23)으로 마감한 대신  그의 아들 엘리암은 다윗의 30인 용사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삼하23:34). 
   최고의 용사로 알려진 요압과, 또한 최고의 모사로 알려진 아히도벨은 나중이 되고 이름도 알려지지 안았던 무명인들이 앞선것을 볼 수 있다(마20:16)

 시바 (삼하9:1-8 = 16:1-4 = 19:17, 24-30 )참고
 시므이 (삼하16:5-14 = 19:16-23 = 왕상2:8-9, 3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