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것으로 시작된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속사의 주역으로 부름 받아 약속의 땅에서 약속의 후손으로 열방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받았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택함을 받은 것은 그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순전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즉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할 만큼 믿음을 소유한 열국의 아비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신약 교회의 구약적 예표로서 구약 구속사의 주역이 될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 될 아브라함(아브람)을 역사의 전면에 부르셔서 계획하신 구속사를 계승시키시는 장면
1-3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는 장면, 4-9절은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본토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한 사실은, 선민을 중심으로 하는 구체적인 구속 역사의 개시가 순종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구원의 여정에 있어서 순종의 중요성을 부각 시키고 있다.
구속의 완성 역시 성부 하나님께 대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철저한 순종으로 이루어 졌음은 주지의 사실(빌2:6-8).
특별히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비록 그 나아갈 바를 몰랐지만 오직 믿음에 의지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간 사실(히11:8)은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그에 따른 즉각적인 실천적 결단을 내표하는 것이다(시118:8,9; 행27:24,25) *히스기야(왕하18;28-31)
한편 오늘날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모두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소망하며 나아가는 자들이다(눅22:28-30). 우리는 이 길이 비록 험하고 힘들 뿐만 아니라 그 나아갈 바를 잘 모르지만 그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중단없이 나아가야 한다(행14:19-22).
아래 연대기를 살펴본다면 아브람이 부름 받았을 때 메소포타미아의 상황(암혹기)과 이짚트 1차 침체기가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암혹기는 아브람이 부름받을 시기에 아브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고, 이짚트 제1차 침체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객으로 애굽에 들어가기 전 제1차 침체기를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시기에 그리고 야곱의 식구들이 애굽에 들어가기 전 제2차 침체기를 맞이 하므로 애굽왕조가 완전히 무너지고 힉소스왕조(샘족속)의 시대가 시작 되었을 때 요셉이 애굽에 총리가 되고 야곱의 식구들이 애굽 고센땅으로 들러가서 다시 애굽왕조가 세워질때 까지 약200-300년간 평안히 거주할 수 있었으며, 나머지 100년 어간에 이집트 왕권이 점점 힘을 발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기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미리 준비한 지도자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거사를 시작하게 하셨다.
15장은 아브라함에게 후사 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창12장 1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으로… 이주한지 1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므로 실망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있던 아브람에게 소위 횃불 언약을 주심으로 이전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확신을 주신 것이 15장 말씀.
창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5: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의로 여겼지만
후손 번성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을 후처로 취하는 잘못을 16장에서 범하게 되었던 사건,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으므로 이스라엘과 아랍(모슬림) 세력들간의 분쟁의 씨앗이 됨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신뢰치 못한 죄악된 발상. 이처럼 인간의 지혜와 의지로써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대신 하겠다는 비 신앙적인 생각이 바로 인류를 죄악 가운데 빠뜨리며 온갖 비극이 여기서 싹트게 되는 것이다
16장 사건 이후 13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후에 일어난 일들을 17장에 기록하고 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뜨리시고 다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후손을 주실 것이란 당신의 언약을 다시 한번 새롭게 확인.
창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17장 18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 생각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55:8)
연약한 인간은 그 마음이 항상 변하고 회의하는 존재이지만 구속사의 주관자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영원히 불변하시며 모든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완전히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17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개명(改名) 하시며 열국의 아비와 어미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의 단순히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신들은 늙어 아들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연 질서와 인간 신체 구조상의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시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역사와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뜻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실히 믿자.
참고 구절
눅 19:3절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지만
19:5절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고 하심
19: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여기서 우리는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5:8)고
아브라함에 이어 구속사를 이아 나갈 이삭의 출생이 기록된 21:1부터 아브라함의 죽음이 기록되는 25:18까지는 아브라함의 생애와 더불어 이삭의 생애가 병행되어 기록되어 있다.
본장을 세분하여 1-14절은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두려운 시험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놀라운 순종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철저한 신앙을 보여준 것이다. 15-19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희생하는 놀라운 신앙을 가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자녀가 번성하며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예언을 주신 사건이 기록. 마지막으로 20-24절은 장차 언약의 아들 이삭과 결혼할 리브가의 혈통을 중간 기사식으로 삽입. 결국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도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고 예언된(9:26) 셈의 후손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100세에 얻은 언약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너무나 비상식적이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명령에도 묵묵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따르는 아브라함의 확고한 순종 정신과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이삭의 헌신적 순종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22장에 기록된 시험은 아브라함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믿음의 조상으로 이겨내야 할 신앙의 연단이며 하나님과 더욱 깊은 신뢰를 쌓는 계기이다. 그러나 전체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구약의 모든 피뿌리는 희생 제사와 마찬가지로 에수의 희생적인 대속 사역을 예표한다는 실로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버리는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요1:14; 빌2;6-11).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희생 제물을 예비하시고 이삭을 살리신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준비하신 희생 제물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시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바 된 사실의 예표라 할 수 있다(요20:17; 히10:5-10).
이러한 하나님을 위해 과연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은 철저하고 즉각적인 순종과 이삭과 같은 헌신적인 순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게 여기신다(삼상15:22)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창12:3절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자손(마1:1-16) 예수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마태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창22:18)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으며(갈3:8,16), 더 나아가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에 참예하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다(갈3:9, 14)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마태복음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우선 구속사에 있어서 "메시야(그리스도)의 개념이 정립되는 과정에 다윗의 언약(다윗 왕조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지속되리라;삼하7:8-17절)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윗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시89:29), 그 자손이 나라의 위를 이을 것(삼하7:12), 그리고 한 아기가 나서 다윗의 위에 앉아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사9:6,7; 11:1)에 대한 하나님이 약속이다.
창16장에서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으므로 이스라엘과 아랍(모슬림) 세력들간의 분쟁의 씨앗이 되었듯이 아브라함의 후처(창25:1) 그두라가 낳은 6섯 아들중 미디안 족속은 엘란 만 동쪽, 아라비아 서북쪽 지역에 널리 퍼져 살고 있던 족속으로 성경 역사상 이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괴롭혔다(민22:4-7; 삿6: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