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

1,솔로몬의 타락과 왕국분열 (왕상11장)

   여호와 순수 신앙을 상실한 노년의 솔로몬의 타락과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와 징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8절이 노년에 이르러 솔로몬이 이방 출신의 아내들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의 범죄에 빠지게 된 사실에 대하여, 9-13절이 다윗 언약과 이미 솔로몬에게 직접 경고된(9:1-9) 바에 따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그의 사후 이스라엘 분열을 징계의 일환(39절)으로 선포한 사실, 14-40절에서는 솔로몬 당대 개인의 징계를 위하여 하나님이 그에 대한 세 대적을 일으킨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며 에돔 사람 하닷(14-22절), 아람 사람 르손(23-25절), 솔로몬의 신복 여로보암(26-40절)이 바로 그 대적들이다. 그리고 특별히 여로보암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다윗 왕가와 분리될  이스라엘 10지파를 주마 약속하시면서 그에게도 전날 솔로몬에게와 같이 계명에의 순종을 조건으로 한 축복과 저주를 말씀하셨다. 끝으로 41-43절은 솔로몬의 죽음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즉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일단 솔로몬에 대한 기사를 종결. 

   ◆ 에돔 사람 하닷과 소바 사람 르손
솔로몬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하나는 에돔 사람 하닷(14절). 그는 다윗 때에 다윗의 군장 요압의 대학살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하여 바로의 은총을 입었다가 다윗과 요압이 죽자 에돔 땅에 돌아와 에돔의 독립을 선언하고 왕이 된 자이다(15-22절). 
  15절 다윗이 에돔을 칠 때 죽임을 당한 자들에 대한 설명 :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었는데” 약간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당시 요압이 일만 이천명을 죽였고(시60편 표제), 요압의 통솔을 받고 있던 아비새가 일만 팔천명을 죽였(대상18:12)을 때 하닷이 애굽으로 피신하게 되었으며, 애굽 바로가 에돔의 왕손(14절) 하닷을 선대하여 왕족의 대우를 받게하고 바로의 처제와 결혼, 그의 아들도 궁중에서 왕족으로 자랄 수 있었다(18-20절).

  대적 중 또 하나는 소바 사람 르손이다(23절). 그는 본래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였는데 다윗이 소바를 징벌할 때(삼하10:19) 다메섹으로 피신하여 수리아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된 자이다(24,25절). 
 그런데 본문을 미루어 보건데 이들은 아마도 솔로몬 통치 초기부터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것으로 보인다(25절). 그러나 사실 이들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할 때는 감히 솔로몬을 대적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러한 그들이 이제 솔로몬이 범죄하고 하나님이 계명에 불순종하자 솔로몬을 대적하여 일어난 것이다. 

 2, 남, 북 왕국 분열의 배경(삼상12-14장)

  1) 르호보암의 실정 및 왕국 분열(삼상12장)
 전반부(1-19절)는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북쪽 10지파가 르호보암의 강압 정책에 저항하여 반역함으로써 왕국 분열의 상태로 돌입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20-33절)는 북쪽 10지파의 정부 수립으로 이루어지는 남북 왕국이 정치적 종교적 대립 상태가 고착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본장의 해심 주제가 되는 바 두 가지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첫째 르호보암 왕의 우매한 처신이다. 그는 북쪽 10지파가 솔로몬 때로부터 계속되어 온 각종 부담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구(3,4절)해 왔을 때, 그는 그것을 자신의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무모한 강압 정치(14절)로 백성들의 불만을 억눌러 버리려 했다. 이에 대해 본서 기자는 한 마디로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15절)고 간단히 논평. 즉 이 말은 물론 르호보암 스스로의 완악함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났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그 배후에서 전날 주신 저주의 예언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임을 간파시켜 주는 말이다. 
  본장에서 주목할 바 또다른 한 가지 사실은 여로보암을 비롯한 북쪽 10지파가 르호보암의 통치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다윗 언약도 저버리고(16절) 하나님에게서도 멀어져가고 말았다는 사실.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북쪽 10지파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하실 때는, 비록 그들이 정치적으로는 분열 독립한다 해도 여전히 함께 선민 언약을 맺은 선민이기는 하므로 분명 다윗 언약에 근거하여 당신 자신에게 대한 순종을 권면했었다(11:37-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한번 획득한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다윗가와 아주 결별을 고하고, 정치적으로 남 유다와 담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임의로 예루살렘 성전 대신 세겜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는 등 하나님에게로부터 신앙적으로도 멀어져 갔던 것이다. 이러한 여로보암이 불순종과 타락은 이후 북왕국에 연이어 몰아닥친 타락의 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마침애 북 이스라엘의 완전한 몰락(B.C.930-722)을 가져온 비극적 상황에 대한 전조라 할 수 있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축복보다 이 세상에서의 욕심을 추구하는 자들은 자신은 물론 후대 사람들까지도 망하게 한다는 구속사적 현실을 발견한다. 

  2) 벧엘 제단 훼파 예언(삼상13장)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1-10절은 익명의 유다 선지자로부터 벧엘 제단이 다윗가의 요시야라는 사람에 의해 훼파(왕하23:15,16)되리라고 예언된 사실에 대하여, 11-23절은 이 익명의 선지자가 벧엘의 한 노선지자에 의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징계의 죽음을 당한 사실, 끝으로 33, 34절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범죄 하는 여로보암의 행위가 결국 여로보암 왕가의 몰락 원인이 되었음.
 
  3) 남, 북 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삼상14장)
  본문의 전반부 1-20절은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13절)의 중병과 그 아내의 아히야 선지자 방문(1-5절), 여로보암의 범죄에 대한 아히야 선지자의 멸망 예언 선포(6-16절),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의 죽음(17-20절)에 기록. 
  후반부 21-31절에서는 남왕국 르호보암 왕의 우상 숭배와 타락(21-24절), 그리고 애굽 왕 시삭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와 그의 죽음 및 남북 왕국 간의 전쟁(25-31절)에 대해 기록.

 3, 남북 왕국간의 전쟁(삼상15장)

세부내용 1-8절은 남왕국의 제2대 왕 아비암의 통치 기사, 9-15절은 남왕국의 제3대 왕 아사의 종교개혁 기사, 16-24절은 남왕국 제3대 왕 아사와 북왕국 제3대 왕 바아사 간의 전쟁 기사(32절), 25-34절은 북왕국 제3대 왕 바아사가 제2대 왕인 여로보암이 아들 나답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의 기사.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바는 남북 두 왕국의 제2대 왕들의 경우데도 초대 왕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남왕국 제2대 왕 아비얌의 경우 그는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 그 왕위가 보존되었고(3,4절), 북왕국 제2대 왕 나답의 경우는 그의 범죄와 함께 그 아비 여로보암에게 주어졌던 멸망의 선고가 시행되어 그 가문의 왕위가 끊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4, 북왕국의 제2,3왕조 교체(삼상16장)

본장의 구체적인 내용, 1-7절은 행악한 바아사에 대해 예후 선지자가 멸망 예언을 선포한 사실을, 8-14절은 바아사의 아들 엘라의 통치와 시므리의 반란에 의한 엘리의 죽음과 함께 북왕국의 제2왕조가 멸망한 사실을, 15-20절은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지 7일만에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오므리에 의해 왕위가 재 찬탈된 사실을, 21-28절은 북왕국의 제3왕조의 초대 왕 오므리의 통치 기사와 그의 악행을 기록. 끝으로 29-34절은 북왕국의 제3왕조 2대왕 아합의 통치 전반에 관한 요약 기사와 그의 바알 신 숭배와 여리고 재건(수6:26) 사실을 기록. 
  거듭되는 북왕국의 왕위 찬탈 시건과 다섯 왕들의 통치 기사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바로 이 다섯 왕들이 하나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였다”(2,7,19,26,31절)는 사실이다. 특별히 아합의 경우에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바알을 섬겨 숭배했다”(31절)고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여로보암의 집”이란 전 역사적으로는 곧 “다윗의 집”과 상반된 개념으로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 되시는 여호와의 공의와 주권을 무시하고 다윗 언약에서 스스로 떠나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고 이기적 욕망으로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인본주의적 통치자 가문의 전형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여 영생을 누리기보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에만 급급한 인본주의적 세속인의 전형이다. 
 더 나아가 아합의 경우에는 남왕국 유다와 동일하게 여호와 종교를 국교로 해서는 계속해서 백성들의 마음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절대 권력을 확립키 어렵다고 보고, 아예 국교를 여호와 종교에서 바알 종교로 바꿈으로써 죄악에 있어 여로보암보다 한 발짝 더 앞서 나갔다. 
 이같이 인본주의적 세상 쾌락과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역사가 암살과 쿠데타등의 유혈 사태로 점철된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온갖 불의를 일삼는 자들에게는 결코 영속적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 최후는 파멸뿐이라는 전 구속사적 진리의 한 증거라 하겠다.

    5, 엘리야의 가뭄 선포와 사르밧 과부(삼상17장) 

본장은 17:1-22:40까지 기록된 일련의 아합 및 엘리야의 행적 기사에 대한 서론부로서, 1-7절에서는 엘리야가 여호와를 떠나 극도로 타락한 인본주의적 권력자인 아합에게 여호와의 징계로서의 가뭄을 선포하고 그릿 시냇가에 숨어 살았던 때의 기사를 기록. 8-16절은 엘리야가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 의해 섬김을 받고 그 답례로 첫 이적을 행사한 사실. 17-24절은 엘리야의 두 번째 이적으로 그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엘리야의 가뭄 심판 선포는 아합의 바알 종교 장려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비와 우레, 또 농경에 관한 전반적인 것은 바알 신에 의해 관장된다고 믿는 바알 숭배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엘리야의 가뭄 심판 선포는 바알 종교와 여호와 종교의 대결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이스라엘이 기근에 시달리게 될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사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ㅡ 출애굽 후 광야에서 농사를 짓지 아니하였을 때에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것처럼 말이다(출16:35; 시78:24; 요6:31)). 
  한편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가뭄 심판 아래 있을 때에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바알 종교의 본산지인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내사 그 과부로부터 섬김을 받게 하시고 또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과부에게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의 이적을 베풀게 하셨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으나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 살아나게 하신 이적적 사건은, 여호와는 천지 만물의 주관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사 자체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질투케 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와 회개토록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도 그 배후에 깔려 있었다(눅4:24-27). 그리하여 궁극에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때에도, 또 실제로 패역무도한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엄중 심판을 시행하고 계시는 중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구속사를 은밀하게 진행하고 계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6,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갈멜 산 대결(삼상18장)

   엘리야 선지자의 활동의 주된 목표는 지난 3년간 계속된 가뭄의 궁극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바알을 숭배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바알 종교의 허구성을 백성들 앞에 드러내고 여호와만이 참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밝히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먼저 1-15절이 여호와께서 이제 이스라엘에 가뭄 심판을 끝내고 비를 내릴 것이라는 예언을 아합에게 선포하기 위해 엘리야가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다를 만난 사실. 16-19절은 엘리야가 아합과 대면하여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을 신청한 사실. 20-40절은 갈멜 산상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450인)들과 대결하여 이기고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처형한 사실. 끝으로 41-46절은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가뭄 심판을 끝내고 비를 내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갈멜 산상에서의 대결 속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엘리야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돌을 취하여 여호와 제단을 수축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알을 버리고 열조의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기도하였다는 사실이다(30-37절).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남북 왕국으로 분단되었지만 두 왕국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이는 지금까지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와 아합의 바알 우상 숭배로 인하여 황폐화되었던 북왕국의 여호와 종교를 회복함으로써 다시 북왕국이 남왕국와 함께 동일한 하나님의 선민으로 다시 뭉치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왕국은 “분열된 이래고 멸망하기까지 한 번도 재통일을 이룩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는 구속사적으로 훗날 열 두 사도를 기초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하여 건축될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를 통하여 분단되었던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가 마침내 참 신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달아 이스라엘 민족의 진정한 영적 재통일은 물론 신. 구약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가 됨(고전12:13)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하나님을 경외한 오바댜(18:1-15)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기 위해 나아온 때는 이스라엘 땅에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까닭에 사마리아는 심한 기근으로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1,2절). 때문에 아합은 궁여지책으로 궁내 대신 오바댜와 함께 친히 물을 찾아나서기에 이른다(5,6절). 이때 엘리야는 아합과 헤어져 홀로 물을 찾아다니던 오바댜를 만나 자기가 아합을 만나기 원한다는 전갈을 오바댜를 통해 아합에게 보낼 수 있었다(7-15절).
  그런데 이러한 본문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오바댜라는 인물이다. 즉 그는 여호와 신앙이 거의 멸절의 위기에 처했던 아합의 통치 아래서, 그것도 궁내 대신이라는 고위직을 갖고 아합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던 것이다(3,12절). 더욱이 그는 광신적인 우상 숭배자 이세벨의 손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백명씩이나 구해 보호하였다(4,13절). 사실 이와 같은 행위가 만약 발각된다면 그는 극형에 처해질 위험스런 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극악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금까지 멸망시키지 않고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는지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댜와 같이 자기의 신앙을 지키며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않은 당신의 남은 백성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보시고 심판을 오래 참으셨던 것이다(왕상19:18). 오늘날 이 세대가 아합 시대의 이스라엘보다 결코 나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당신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의 맡은 바 사명을 다하여 이 세대에 하나님의 의를 실현해 나가는 일에 전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7, 엘리야의 절망적인 탄원(삼상19장) 

 우리는 바알 선지자들(450명)과 엘리야 선지자의 갈멜산 대결 장면과 그 결과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천지만물을 운행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구속사적 대명제를 확인함에 이어서 본장에서 왕후 이세벨의 위협 속에서 고통하며 부르짖는 엘리야의 그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계시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거의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은 빈틈없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거듭 살펴보게 된다. 
  먼저 1-8절에서는 바알 종교의 후원자로서 전장의 갈멜산 사건으로 악에 바친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도피하는 중 극도로 지친 엘리야가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있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호렙산으로 가게 된 사실. 9-18절에서는 엘리야가 호렙산 굴 속에서 도피 생활을 하는 중 강한 바람과 지진, 불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현현을 목격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 사명을 부여받은 사실. 
 
 ◆ 엘리야를 찾아오신 하나님(19:1-18)
 엘리야는 브엘세바 로뎀나무 아래서 비탄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의 도움을 받고 40일을 주야로 행한 끝에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그곳 한 굴에 유한다(9절). 그가 호렙산에 오른 것이 하나님의 지시인지 아니면 자의적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당하며 악인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산에 올랐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아무튼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그의 모든 의문을 해소하며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힘과 사명도 부여받았다(15-18절). 이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즉 교제를 통해서 해결된다.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찌 다 헤아리며, 또한 좌절과 낙망을 경험하지 않을 수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분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으로 좌절과 낙망되는 일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문의 내용 가운데 주목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임하신 방식이다. 하나님도 엘리야가 서있는 곳 앞에서 강한 바람과 불, 지진을 일으키셨다(11,12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느 것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이후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임하셨다. 사실 바람이나 불, 지진 등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출3:2; 19:18; 사29: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와 같은 모든 것이 지나간 이후에 비로소 세미한 음성 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은 매우 교훈적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불로 제물을 사르고 비를 내리게 하는 이적을 통해 실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이적이 사람들의 악한 심령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실의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이제 하나님은, 그러한 엘리야에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교훈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이적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는 했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었다.
  한편 엘리야에게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되며 예후가 이스라엘 왕이 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잇는 선지자가 될 것을 알려 줌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이 미쳐 알지 못하느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이 땅에 성취시키심을 보여 준다(15-17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자신 뿐 아니라 엘리야의 말에 대해(14절) 7천인의 남은 자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어떠한 영적 암혹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유지케 하심을 보여준다. 이는 말세의 때를 당하여 사단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어려운 이때에 참된 신앙을 지키려는 성도에게 큰 힘을 준다. 

 8, 아람과 북이스라엘 제1,2차 전쟁(삼상20장)

본장은 .B.C.856년경 아람과 북이스라엘 간의 제1,2차 전쟁 기사를 중심으로 아합 왕의 승리와 여호와께 대한 불순종에 대해 기록. 먼저 1-12절은 아람 왕 벤하닷이 북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아합 왕에게 거만하게 엄청난 공물과 여자들을 요구한 사실. 13-15절은 한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람에 대한 아합의 승리를 예언함으로써 아합이 출전 준비를 서둔 사실. 16-21절은 아람에 대한 아합의 1차 승리, 22-30절은 아합의 2차 승리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31-34절은 여호와께서 죽이기로 적정하신 아람 왕 벤하닷을 아합이 협정에 의해 살려준 사실을. 35-43절은 이러한 아합의 불순종에 대해 선지자가 최후의 심판을 선고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북왕국 이스라엘 우상 숭배로 인하여 극도로 타락해 있었으나 그래도 북왕국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와 보호 아래 있던 신정국가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악한 통치자 아합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백성의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단 외적인 침입을 막아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호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향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발견되듯이 끝내 패역하다가 B.C.722년 앗시리아에게 함락된 것은, 실로 이스라엘의 패역이 나아가 이런 이스라엘이 예표하는 인간의 패역이 얼마나 완고한 것인지에 대하여 새삼 몸서리치게 한다. 

 9, 나봇 포도원 탈취 사건(삼상21장)

 본장에서는 대내적인 측면에서의 아합 왕의 약정과 그로 인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보여 주는 일례인 아합의 나봇 포도원 탈취 사건을 중심으로 일련의 기사들을 소개.  전반부1-16절에는 사악한 이세벨의 교묘한 책략에 힘입어 아합이 평소에 탐을 내던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하게 된 사실. 후반부17-29절에서는 엘리야 선지자가 나타나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자 아합이 잘못을 뉘우친 사실. 
  여기서 아합의 나봇 포도원 탈취 사건은 신정왕국 이스라엘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인본주의적인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사악한 아합 왕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치는바 악영향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즉 아합의 나봇 포도원 탈취는 왕의 사유지 증대를 통하여 전제 주의적 왕권을 강화하고, 또 백성들을 자영농이 아닌 소작농의 지위로 전락시켜 왕의 사유지를 경작하게 함으로써, 마치 대지주가 소작농들을 거느리듯이 백성들에 대한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 정착 후 이스라엘 개개 가정에 골고루 분배된 토지는 한 개인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후손 대대로 이 토지를 잘 간수하는 것 자체가 곧 개개 가문의 삶 전반에 대한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으로 생각되었고, 여호와의 언약적 관계가 연속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따라서 아합의 나봇 포도원 탈취 사건은 바로 이러한 백성의 언약적 삶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며, 신정왕국 이스라엘을 완전히 전제주의적 이방 왕국으로 변모시키려는 사악한 행위였다. 
 아합의 나봇 포도원 탈취 사건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사단이 하나님의 선민들이 천국 기업을 지키려는 일을 끊임없이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 기업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은 결코 실패함이 없을 것을 예표 한다 하겠다. 

 10, 아합왕의 최후(삼상22장)

본서 전반부(1-40절)는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 대로(20:42) B.C.853년경 아합 왕이 아람과의 제3차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변함없는 불신앙적 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먼저, 1-4절은 이람과의 제3차 전쟁을 위하여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한 사실을, 5-8절은 대 아람전 출전에 앞서 여호와의 신탁을 묻는 장면을, 9-12절은 아합 측근의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거짓 예언으로 아합의 출전을 적극 후원한 사실. 13-23절은 참 선지자 미가야가 아합의 전사를 거듭 예언한 사실, 24-28절은 참 선지자 미가야가 핍박을 받은 사실, 29-40절은 아합이 길르앗 라못에서 전사하여 사마리아에 장사된 사실을 보도한다.
  한편 후반부41-53절의 경우 먼저 41-50절은 아합 왕과 동맹 관계를 맺었던 유다 왕 여호사밧의 통치와 그의 행적에 관해, 그리고 끝으로 51-53절이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통치 전반에 과한 개요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유다 왕 여호사밧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전쟁인 줄 알고도 출전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 가운데 구출받고 본국으로 귀한하게 된다. 따라서 비록 여호사밧도 아합과 마찬가지로 잘못한 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던 북왕국 아합 왕과  은혜 가운데 있던 남왕국 여호사밧 왕이 이룬 극명한 대조를 발견, 이는 다윗 언약(삼하7:16)의 성취를 위해서 그 가문의 왕위 만큼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수넴 여인과 아람 왕 하사엘(왕하8장)

   본문은 먼저 1-6절이 엘리사의 예언을 따라 7년 기근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가 전토를 잃어버린 수넴 여인이 다시 기업을 회복하게 된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는 반드시 이와 같은 축복을 결단코 얻게 되리라는 것이다. 
  7-15절은 엘리사가 하사엘을 찾아가 예언한대로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 왕이(왕상19:15) 된 사실. 이어 16-24절은 전날 아합과 여호사밧의 결혼 동맹에 의해 아합의 사위가 된 남왕국 유다의 제5대 왕인 여호람의 통치(B.C.853-841) 기사를, 25-29절은 남왕국 유대의 제6대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아 왕(B.C.841)과 아합의 아들이자 북왕국의 제9대 왕인 여호람(요람)이 연합하여 하사엘과 전쟁하다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크게 부상한 사실. 이는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왕상19:17)라는 예언이 서서히 성취. 이는 북왕국 아합 가문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남 왕국 유다까지도 연결시켜 신앙타락을 자초케한 심판.

◆ 남유다 왕 아하시야의 통치(8:25-29)
  여호람의 뒤를 이어 남유다의 제6대 왕으로 제위한 아하시야(B.C.841년)는 단 1년밖에 통치하지 못했다. 그가 이처럼 단명한 것은 자기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과 유대 관계를 지속한 것이 화근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하시아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동맹을 맺어 아람 하사엘과 싸웠는데, 전략 요충지였던 길르앗 라못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 요람이 부상을 당하자, 그를 문병하러 갔다가 예후에 의해 죽임당하고 만 것이다(왕하9:27).

  아합 왕가에 대한 심판 (삼하9장)

   본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1-10절은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한 사람을 전달케 한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11-20절은 예후가 반역의 기치를 올리고(B.C.841년) 아람 왕 하사엘과의 전쟁에서 부상당한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피해 있는 이스르엘 성으로 쳐들어간 사실, 21-26절은 예후가 여호람을 살해한 사실, 27-29절은 예후가 아합의 외손자 유다 왕 아하시아도 살해한 사실, 30-37절은 아합의 아내로서 엘리야 때부터 이스라엘 및 유다를 우상 숭배로 타락시킨 악녀 이세벨이 예후에 의해 마침내 살해되고 장사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엘리야 선지자을 통하여 아합 왕가에 선포된 이후 적어도 14년 이상이 지난 후에 성취된 것은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아울러 심판의 주체자가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최후의 날에 있을 영원한 심판의 예표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예후의 종교 개혁(왕하10장)

  세부 내용 1-11절은 예후의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 성 정복과 아합 왕가의 자손 70인을 숙정한 사실,12-14절은 아합의 딸 아달랴의 아들들, 즉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42인도 예후가 살해한 사실, 15-29절은 북왕국 전역에서 바알 제사장들을 불러 한 곳에 모아 살해하고 바알 당을 훼파하는 등의 종교 개혁을 단행한 사실, 30-36절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였으면서도 그 참 뜻을 깨닫지 못한 예후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북왕국의 통치자 자리에 오른 후에 하나님과 그분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서서 충실한 신정왕국의 대리 통치자가 되기보다는 이전의 다른 왕들과 동일하게 인본주의적 절대 왕권을 추구하였다. 또한 그는 아합 왕가와 바알 종교를 궤멸시키는 일에는 지극한 열심을 나타내 보였으나, 여호와를 섬기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자신의 권세욕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혁명(왕하11장)


 세부 내용 1-3절은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예후로 말미암아 북왕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인하여 자기 신변에 대해 극도로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다윗 왕가의 씨를 차라리  아에 진멸하여 다윗 언약으로 선민에 대한 왕권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다윗 왕가를 멸절히켜 자신 및 자신의 후계자가 별다른 반발없이 유다의 왕권을 차지하고자 시도한 사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그같은 이달랴의 학정 속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어 성정에서 6년간 숨어 살았던 사실, 이어서 4-16절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혁명을 일으켜 아달랴를 몰아 내고 요아스로 하여금 다윗 왕위에 오르게 한 사실, 17-21절은 아달랴의 처형과 여호야다의 종교개혁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아달랴를 통한 다윗 왕가에 대한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이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하여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구원하사 다시금 다윗 왕위를 잇게 하시는 은총을 보이신 것의 구속사적 의미는 실로 막중하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다윗에게 주신 다윗언약(삼하7:16)과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왕하8:19; 왕상11:36)고 거듭 주신 약속을 신실히 지키신 것이었다. 
 한편 요아스를 통하여 다윗 광가으 대를 잇게 한 제사장 여호야다는 바알 당을 훼파하며 성전의 기능을 다시 회복시키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남유다 9대왕 아마샤와 북왕국 13대왕

   여로보암2세의 통치(왕하14장)

  본장에서는 남왕국의 제9대 왕 아마샤(B.C.796-767)와 북왕국의 제13대 왕이자 예후 왕가의 제4대왕인 여로보암 2세((B.C.793-753)의 통치를 서로 비교하여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어리석은 반응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7절은 비교적 선정을 베푼 아마샤의 통치에 관한 개요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실, 8-14절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교만해진 아마샤가 북왕국의 제12대 왕인 요아스에게 도전했다가 오히려 크게 패한 사실, 15-22절은 여로보암2세가 북왕국의 제13대왕이 된 사실과 유다 왕 아마샤가 모반자들에 의해 살해된 사실, 23-29절은 여로보암 2세의 악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사 크게 번영을 누리게 하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 북왕국 심판의 날 예고 (아모스 선지자)
              아모스 5 : 18 – 20 
  아모스는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에 있는 드고아 출신,.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 운반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남쪽 유다출신이면서 북쪽 이스라엘을 향해서 예언 활동을 했던,  그는 암7: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이것을 볼 것 같으면 선지자도 아닌 농부를 선지자 되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함으로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유다왕 웃시야(주전791-740)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주전793-753) 때에 활동,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남쪽 유다와 분열 된지 이미 170년이 되었을 때 이므로 앞으로 30년 후에 임할 심판의 날을 예고하고 있다. 

여로보암 2세의 부왕인 여로보암 1세는 왕상12:29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오므리의 무역정책 정략결혼 페니키아 왕의 딸 이세벨을 아들 아합과 결혼,. 이때 바알숭배가 북쪽 이스라엘에 널리 퍼져있을 당시, 그들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여로보암2세가 북쪽을 통치하는 때, 최대의 태평성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마치 전 솔로몬의 시대의 황금기가 다시금 재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언제나 역사의 교훈은 이런 태평성대의 융성한 시대야말로 가장 타락의 시대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화가 깃들고 경제적인 풍요가 백성을 타락으로 몰아가고 더불어 타락된 문화는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 이런 심판은 이제 그들이 멀지 않는 장래에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아모스 선지자가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 30-40년 간, 아모스는 벧엘로 가서 예언 했으나 그들은 마치 노아의 시대 120년 동안 노아가 홍수 심판의 때를 외쳤지만 그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비웃고 조롱했던 것과 똑 같은 현상이었을 것이다
 본문  암5:18-20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날󰡓이란 구원 받는다는 대망의 날이 아닌 바로 무섭고 두려운 심판의 날인 것을 알려줍니다(5:18-20).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여호와의 날” 이 도래하면 이방 국가들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므로 무조건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는,  즉 여호와의 날에 대해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그날이 “여호와의 날”이 패역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결코 구원의 날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멸망의 심판만이 있을 뿐임을 선포 한다   

   이러한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모스의 멸망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통 할리 없었으나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단호히 심판을 선언했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으로서 마땅히 요구 되는 바 의로운 삶은 살지 못하면서  선민의 특권만을 생각하면서 여호와의 날이 그들에게 축복의 날로 착가하면서 살았다 
  이에 아모스는 이 같은 그릇된 확신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죄악된 행실을 고치지 않는 이상 그 날은 결코 그들에게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5: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너희에게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그날은 너희에게 구원이 아니라  비극적인 멸망의 날....

 암5: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북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사모했던 여호와의 날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절망적인 심판의 날이 될 것을 예언하는 예언의 말씀을 비웃음로 넘긴 심판이 결국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가므로 북왕국은 200년 역사와 함께 사라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