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에훗과 삼갈의 활약으로 80년 동안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이스라엘(삿3:30)은 에훗 사후 다시금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다(1절). 이에 하나님은 하솔 왕 야빈을 들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기까지 무려 20년 동안을 압제하게 하셨다(2,3절).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내 당신에게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호소를 외면하시지 않았으니 이제 사사 드보라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려하신다(4절)
본장의 내용을 보면 1-3절에 하솔 왕 야빈의 20년간에 걸친 압제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기록, 이어서 대 야빈 전(戰)을 위한 여사사 드보라와 바락의 출전(4-10절). 겐 사람 헤벨의 개입(11절), 폭우를 내려 적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드보라의 군대 장관 바락의 승리(12-16절). 헤벨의 아내 야엘에 의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죽음(17-22절), 이스라엘의 승리(23,24절)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사기 전체가 모두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패하게 하시는(고전1:27) 하나님의 독특한 방법이 소개되고(신7장 : 믿음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긴 사례), 즉 하나님은 여선지 드보라를 사용하셔서 시스라 군대를 파하시고, 헤벨의 아내 야엘과 같은 여인을 통해 적장 시스라를 죽이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존중받지 못한 당대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이 여성들을 사용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종들의 사역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임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여선지자 드보라를 보라!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인 야엘을 보라! 이들을 본다면 누구도 자신은 능력이 없다고 핑개치 못하리라, 다만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순종뿐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세워가는 구속 사역에 가진 바 능력을 다하여 절대 순종의 자세로 동참함으로써 구속사의 성취를 앞당기고,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누려야 할 것이다.
1) 하나님께 대한 범죄의 기준은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1절). 이러한 사실은 성도의 행동 기준이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함을 교훈해 준다(롬8:4).
2) 죄는 계속되는 안녕 중의 나태함에서 비롯되기 쉽다는 점이다. 즉 이스라엘의 80년 간의 평화(삿3:30)가 범죄와 방종을 불러왔듯이 세상 안일은 성도들을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의 길로 빠지게 만들기 쉬운 법이다(눅12:9). 성도들이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 경성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3) 죄는 회개할 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올무가 된다는 점이다(3절; 삿3:9,15).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범죄 하였을 경우 즉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시51:3,4).
4) 하나님은 회개하고 당신께 부르짖는 자의 음성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점이다(4절). 사실 그 같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악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롬6:1, 15) 연약하여 범죄 하는 자들의 회개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변함없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아닐 수 없다(시130:4; 요일1:9)
기드온 사역 중 가장 화려한 승리의 장면을 보도, 먼저 군사 병력의 규모가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되는 일반적인 원칙과는 전혀 달리, 하나님은 3만 2천의 병력 중에서 오직 삼백 명만을 선발하셨다(1-8절). 그리고 타고난 성격상 조심성 있고 소심한 기드온에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승리가 분명하다는 확신을 새삼 주시기 위해, 한 병사의 꿈을 통해 기드온에게 승리를 확신케 하셨다(9-14절). 그 후 기드온은 하나님이 주신 용기로, 또 그분의 지시에 따라 싸움을 한 결과 미디안 족속을 완전히 궤멸하는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15-23절). 한편, 기드온이 이번 전투에서 형제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그들도 전공을 세우는 장면이 특별히 소개되고 있다(24-25절).
본장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것은 결코 이스라엘의 승리가 군사력의 많음이나 전략의 지혜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 기드온마저도 아무 소신이나 용기가 없는 유약한 청년에 불과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셨을 때 사사로 나설 수 있었던 사실도 반영하고 있다.
본장은 기드온이 전장(7장)에서 시작된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투를 마무리 지었음과 그 후의 남은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투는 그에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낳았는데 본문은 그 첫 번째 기사이다. 즉,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사가 되어 미디안 군대와 싸울 사람을 소집할 때 그는 우선적으로 미디안의 침략으로 인해 피해가 극심했던 므낫세, 납달리, 스불론, 아셀 지파의 사람들을 불렀었다(삿6:35). 그러다가 미디안에 대한 기습 공격이 성공을 거두자 도주하는 미디안 군사들을 섬멸하기 위해 보다 남부에 위치했던 에브라임 지파에 원군을 요청하여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격멸하는 데 성공했다(삿7:24,25). 그런데 한 가지 문재가 있었다. 즉, 에브라임 지파가 미디안과의 전투에 자신들을 처음부터 참여시키지 않은 사실에 불만을 품고 기드온에게 격하게 항의했던 것이다(1절). 그러나 그드온은 자신의 공로보다도 뒤늦게 전투에 참가하였던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더 크다고 치하함으로써 에브라임 지파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분쟁을 마무리하였다(2,3절).”
한편 에브라임 지파의 그 같은 불만은 그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즉, 본래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이 속한 므낫세 지파와 함께 요셉의 후손으로서 므낫세 지파에 대하여 매우 심한 경쟁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에브라임 지파는 장자 지파인 므낫세 지파를 제치고 야곱으로부터 실질적인 장자로서의 푹복을 받았다(창48:17-19). 그 뿐 아니라 그들은 가나안 정복에 큰 공을 세웠던 여호수아와 같은 지파란 점에서 항상 우월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므낫세 자신들이 그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들어 기드온과 므낫세 지파를 시기한 것이다.
아무튼 에브라임 지하의 고연한 불평은 기드온의 겸손한 말과 행돋으로 인해 무마되었다. 사실 기드온의 업적은 에브라임 지파의 업적에 비해 월등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이 자기를 낮추고 에브라임 지파를 높인 것은 그의 성숙한 신앙의 면모를 보여준다. 즉, “그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성경의 기본적 진리에 부합하고 있었던 것이다(마5:9; 빌2:3). 추측컨대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이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승라한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처럼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 역시 신앙의 연륜이 쌓여 질수록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왕상3:6-14; 빌3:3-7).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에 도취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긍하거나 자신을 뽐내는 것은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위치에 내려와 섬기는 자의 본을 보여셨지 않는가(마20:28)!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할 성도들(빌4:13) 역시 마땅히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은 횃불 작전의 성공과 하나님이 역사하심, 그리고 납달리, 앗셀, 므낫세 및 에브라임 지파의 협력으로 말미암아(삿7:19-25) 기드온이 미디안의 주력 부대를 섬멸하고 패주하는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여 처형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기드온의 3백 용사는 전쟁에 지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도주하는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한다(4절). 2)그러던 중 갓 지파의 지경인 숙곳과 브누엘에 이르러 먹을 것을 요구하나 거절당한다(5-8절). 3)마침내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적들을 섬멸한 후(9-12절) 귀환하게 된 기드온은 도중에 숙곳과 브누엘에 이르러 앞서의 일로 인해 그 곳 사람들을 징벌한다(13-17절). 그리고 이어 세바와 살문나를 전범(戰犯)으로 처형한다(18-21절).
이와 같은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불신앙을 토대로 브누엘은 모두 갓 지파의 지경에 있는 성읍이었다(창32:30; 33:17; 수13:20).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 한 민족으로서 응당 기드온과 그 용사들을 도왔어야 함이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드온이 이스라엘 용사보다 무려50배나 많았던 미디안 군대를 결코 섬멸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기드온의 청을 거절하였다. 즉, 은 미디안 군대가 기드온의 용사들을 격파한 뒤에 있을 미디안 군대의 보복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민족과 형제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무사 안일만을 도모한 기회주의적이요 이기적인 작태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무시한 불신앙의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한 기드온에 의해 준엄한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오가며 적당히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만을 채우고자 하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결국 하나님이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마6:24; 눅16:13). 물론 비록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한 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의 마땅한 자세가 아니다.
한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냉대와 조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성도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할 때는 같은 성도들이라 해도 때로는 비난과 조소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누구든지 낙담하고 그 일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 갖기 마련이다. 특별히 기도와 협력으로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도움을 거절하고 냉대한다면 그 낙심이란 더욱 큰 법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주 안에서의 선한 싸움을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 싸움을 종결하는 그 날까지 비록 힘들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후4:8; 빌3:4).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일을 다 미치는 날, 그 동안 우리를 비난하고 조소했던 자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롬14:10).
기드온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자(삿7:1-8:21) 이스라엘 내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그것은 바로 백성들이 기드온을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하고자 한 것이다(22절). 그러나 기드온은 백성들의 그와 같은 요구를 거절하고 이스라엘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강조하였다(23절).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는 모두 중앙 집권적인 왕정 체제를 갖추고 그 강력한 힘으로 항상 이스라엘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도기적 체제인 사사제도를 청산하고,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한 기드온을 왕으로 세움으로써 보다 강력한 체제하데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러한 교구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보다 외적인 인간의 능력이나 제도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불 신앙적 태도에서 왕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둘째, 그들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망각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자신들 임의로 왕을 세우려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의 태도는 분명히 경솔하고 불 신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삼상8:7;12:12). 반면 기드온의 태도는 실로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즉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요 통치자임을 선언하고 왕이 되기를 거절했던 것이다. 그는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자신도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으며, 또한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스리는 자가 하나님이심을 피부로 체험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리에 앉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이다.
한편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훗날 사무엘에게 다시금 왕을 요구하였다(삼상8:4-22). 그리하여 초대 왕으로 사울이 등극하였으니 사사 시대는 끝나고 왕정 시대가 도래 하였다(삼상10:17-24절). 그러나 그것은 열방과 같은 전제 군주제가 아니라 신정적 군주제여야 했는데(신17:14-20)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곧잘 망각하였다. 그리하여 저들의 역사는 사사 시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징계로 점철되었는데 결국은 남북 왕국 패망이라는 비극을 몰고 왔다(왕하18:10-12; 25:8-21).
지금까지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내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신앙을 보이는 등(22,23절)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로서 비교적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러한 그도 말년데 결정적인 두 가지 과오를 범하였는데 본문은 그 사실에 대한 언급이다..
먼저 기드온의 첫 번째 잘못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에봇을 만든 점이다. 즉, 그는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탈취한 금귀고리와 각종 장신구를 녹여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에 보관함으로써 장차 백성들이 범죄 할 소지를 만들었다(24-27절). 다시 말해 훗날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마치 신을 섬기듯이 기드온의 에봇을 더 열심히 섬겼던 것이다. 물론 기드온은 미디안 전투에서의 노획물로 에봇을 만듦으로써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헛된 열심일 뿐이다(요2:17).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기드온은 자기 한 사람의 실수가 자기 뿐 아니라 온 백성들을 파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모든 일에 신중ㅇ르 기했어야 했다.
다음으로 기드온의 또 다른 실수는 그의 문란한 사생활이다. 즉, 그는 여러 명의 아내와 첩을 두고 또한 70여 명에 이르는 아들을 두었다(29-32절).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의 결혼 제도(창2:24)를 무시하고 이방의 일부다처제 풍속을 좇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훗날 가문의 파탄을 초래하였으니 그것이 곧 그의 70명 자녀 중 요담만을 제외한 모든 자기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의 손에 몰살당한 사건이다(삿9:1-5).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아니하고 인간의 욕정을 좇아 행하는 모든 일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밝히 보여준다(삼하13:1-39).
아무튼 이상과 같은 기드온의 행적은 아무리 위대한 신앙인이요 지도자라 할지라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항상 실수할 수 있음을 증거 해 준다(창20:2;민20:12;삼하11:4;사1:5,6). 그러므로 무릇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전10:12). 특히 우리 모두는 자신이 과거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신분이었음을 한시라도 망각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언제든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 감사의 방법은 바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온전히 하나님이 뜻을 좇는 것이다(잠4:27).